◈ 진충사(振忠祠)-정충신사당(鄭忠信祠堂)
-종 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6호
-지 정 일 1984.05.17
=소 재 지 충남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740
조선 전기 무신인 정충신 장군(1576~1636)의 영정과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사당이다. 장군은 임진왜란(1592) 때 17세의 나이로 권율 장군을 도와 싸웠으며, 인조 2년(1624)에는 이 괄의 난을 평정하고 정묘호란 때는 팔도부원수(八道副元帥)로 참전하였다.
그 뒤 포도대장, 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이곳은 인조 14년(1636) 왕명으로 세운 이후 영조 13년(1737) 고쳐지었다.
정조 24년(1800)에는 당시 곡성 현감으로 있던 그의 5대 손인 정세흥과 9대 손인 정재칠이 각각 정미면 신시리와 현 14대손 정은영 가옥 옆으로 옮겼고 1970년대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이곳에는 중요민속자료 36호로 지정된 유품 5점을 비롯한 그의 유품들을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해마다 양력 4월 25일 유림들과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 하면...........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위치한 국사봉 동쪽 기슭에 건립된 진충사는 조선 중기의 명장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사부조지전(조정에 큰 공훈이 있는 공신의 신주를 영구히 사당에 모시게 하던 특권)의 사우(祠宇)이다.
진충사의 창건연대는 조선 인조 14년(1636) 8월에 왕명으로 건립되었고, 영조 13년(1737) 10월에 중수하였다. 정조 24년 (1800) 5세손 곡성현감(谷城縣監) 정세홍에 의해 당진군 정미면 신시리로 이전되었다가 광무(光武)1년(1897) 2월에 9세손 정재칠 대에 지곡면 대요리 740번지 종손가 옆으로 다시 이건하여 73년간 봉안해 오다가 197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축하였다. 사우의 본당에는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 휘호로 된 현판이 걸려 있다.
진충사가 이곳에 건립된 사유는 조선인조 2년(1624)에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당시 안주병사겸 방어사로 있던 정충신 장군이 전부대장으로서 토벌군을 이끌고 서울 길마재에서반군을 전멸시킨 공으로 조정에서 진무공신 1등 훈호를 내리고 금남군에 봉하였다.
당시 많은 공신들이 반적의 몰수된 전답과 노비를 차지하려고 하였으나 정충신 장군만 그런 뜻이 없는 청렴결백 한 것을 보고 당시 장군의 상사였던 옥성부원군 장만이 임금에게 공신 가운데 오직 정충신만이 아무것도 얻은 바 없다는 상소를 올려 임금이 당시 서산의 마힐산-(지금의 지곡면 대요리의 국사봉) 일대의 몰수된 이 괄의 토지(당시 약45만평)를 하사하여 장군의 사패지지(賜牌之地)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장군이 생존시에 유택(幽宅)으로 국사봉을 택하였고, 사후에 이곳에 예장(禮葬)하게 되었으며 장군의 유택 부근에 진충사를 건립하게 되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전퇴칸을 두고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규모는 본당 8평, 내삼문 3평, 동재겸 유물전시관 12평, 서재 12평, 외삼문 3평, 내담장 150m, 외담장 80m와 사적비 1기, 홍살문 등이 있다. 매년 양력 4월 25일 정일(定日)로 시민(市民)과 유림(儒林)이 모여 제향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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